
새누리당이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를 놓고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전방위 압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도 정당공천 폐지를 찬성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정당공천제 폐지를 잘못 대처했다가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법 개정 힘들면 이번 선거라도…"
민주당·시민단체 전 방위 공세
"수도권 지키려다 선거 망칠 수도"
새누리 내부에서도 경고 목소리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13일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반대하는 것과 관련, "1월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월 국회에서 시련이 올 것"이라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그는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당공천제 폐지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던 만큼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며 "새누리당이 폐지에 반대하는 것은 지난 대선에서는 국민에게 표를 얻기 위해 약속을 하고는, 이제와서 딴 마음이 들어 중앙권력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새누리당이 계속 반대한다면 저희들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2월 국회에서 매우 절박한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경제활성화 관련 각종 법안들의 처리가 사실상 힘들다.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은 또다른 압박카드를 내놓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우선 폐지한 뒤 후속 대책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공천을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말 법을 고치기 어려우면 이번 지방선거만이라도 법을 고치지 않고 한번 시행해보자. 그리고 문제가 없으면 그냥 가는 것이고, 문제가 있으면 고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천보다 더 큰 기득권이 어디 있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커넥션이 있었나"며 "저쪽에서 공천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날, 그 사례를 구체적으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도 공세적인 행동에 나섰다. 경실련과 균형발전지방분권전국연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 1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대선공약 이행촉구 시민행동(시민행동)'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대선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였다. 시민행동은 오는16일 국회 정론관에서 사회원로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24일에는 국회 본관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달말 활동시한인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관철되도록 고강도 압박을 가한다는 방침이다.
이달들어 KBS MBC SBS 등 방송 3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서도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에 따라 정당공천제 폐지에 무조건 반대하던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미묘한 기류변화가 감지된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방권력을 중앙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자는 취지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약속했는데 이제와서 없던 일로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다른 인사는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에 반대하는 서울과 수도권 의원들 봐주려다가 지방선거 전체를 망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에 자신의 핵심 대선공약인 정당공천제 폐지를 다시 한번 촉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권기택 기자 ktk@bus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