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진 강동구의장, 영파여고생 태워주기 봉사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이틀 전 도로에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29일 아침 서울 송파구 영파여고 정문 앞에 하얀색 승합차가 섰다.
승합차에서 여학생 10여 명이 내리더니 "아저씨 고맙습니다"하고 외치고는 교정으로 뛰어 들어갔다.
운전석에 앉은 윤규진(56)씨는 "지각은 아니지?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라"라고 말하고는 다른 학생을 태우려고 서둘러 차를 돌렸다.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시작한 윤씨의 '학생 실어나르기'는 오전 8시30분께 끝났다. 방학이라 등교시간이 늦어졌지만 윤씨는 학기 중에는 오전 6시30분부터 오전 8시10분까지 학생들을 차에 태워 교문 앞까지 데려다 준다.
윤씨는 1992년 3월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무료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영파여고의 어지간한 교사들보다 오랫동안 이 학교 앞을 다닌 덕에 이제는 상당수 교사들이 윤씨를 알아보고 인사한다.
윤씨는 18년 전 큰 딸이 영파여고에 입학한 것을 계기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딸만 학교까지 태워줬는데, 졸린 눈으로 등굣길에 나선 다른 학생들이 눈에 밟혔다는 것이다.
30일 연합뉴스와 만난 윤씨는 "내 딸만 데려다 줄 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함께 데려다 줘야겠다고 결심했다"며 "그래서 아예 승합차를 사고 다른 학생들을 모아서 학교까지 태워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학생은 몸이 아파 쉬더라도 윤씨는 18년 동안 국외나 지방으로 출장을 떠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일 학생들을 태워줬다. 어느 순간부터 영파여고 학생들은 윤씨를 '차 태워주는 아저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4년에 한 번씩 윤씨가 등교봉사를 중단하는 기간이 있다. 지방선거일 시작 3주 전부터 선거일까지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면서 못하게 하더라고요. 또 저도 선거운동을 해야지요." '차 태워주는 아저씨' 윤씨의 정체는 바로 서울시 강동구의회 의장이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1991년부터 지금까지 구의원을 역임하고 있는 그는 전국에서도 몇 안 되는 5선 의원이기도 하다.
윤 의장은 여기에 230개 기초의회 의장으로 구성된 전국시군구의장단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다.
구의원이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풀뿌리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전국시군구의장단협의회 회장이라는 직함에는 대통령도 가볍게 볼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그러나 학생들은 대부분 윤 의장이 구의원인 사실조차 모른다. 그의 선거 포스터를 본 한 학생이 이미 다선 의원인 그에게 "아저씨 구의원 하시려고요?"라고 물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의 봉사를 다음 선거를 노린 `쇼'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윤 의장은 "구의원도 선출직 정치인인데 저를 반대하는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설령 쇼라고 하더라도 20년 가까이 매일 해왔다면 그것을 쇼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며 웃어넘겼다.
kind3@yna.co.kr [2009-12-30 05:37 송고] |